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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3 [우리온] [꿈찾D] "'내 열정 최대치를 쏟아부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를 찾고 있어요"

작성자 교무실 날짜 2024-03-05 18:34:30 조회수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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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not?" 파워 긍정왕 DnL 8기 박보연

DnL School 8기 학생들의 꿈을 담은 <꿈을 찾는 DnL 스쿨>, 줄여서 ‘꿈찾D' 연재를 시작합니다. DnL은 Democracy and Leadership의 약자로 우리온의 탈북청년 시민사회 리더 양성 프로그램입니다. 선발된 학생들은 1년간 전문가와 리더의 강연과 NGO 인턴십 활동을 통해 민주주의 의식을 갖춘 시민사회 전문가로의 첫걸음을 시작하게 됩니다.

<꿈찾D> 시리즈 두 번째 주인공은 ENFP(재기발랄한 활동가) 그 자체인 DnL 스쿨 8기 막내 박보연(20) 씨.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22학번으로 현재 2학년 재학중이다. 항상 밝은 모습만 보여줬던 그녀에게도 견디기 힘든 어려운 과거가 있었다. 험하디 험한 탈북 과정을 거치면서 맑고 순수한 9살 소녀에게 남은 트라우마. 그 이야기와 함께 그녀가 어떻게 긍정적이고 성숙한 20살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자세히 들어봤다.

사진=박보연 씨 제공.

한 마디로 자신을 표현하면?

긍정적. 긍정적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요. 제가 최근에 더 많이 이 부분에 대해서 느꼈는데, 팀플이나 대회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이랑 의견을 맞춰가는 과정들이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우리 할 수 있다. 해보자.”라는 말을 계속 하는 것 같더라고요. 다른 사람들보다 그런 말을 자주 써요. "Why not?" 장난치면서 "왜 안 돼! 할 수 있어!" 이런 말을 계속 사용해요.

'긍정왕 보연'에게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중고등학교를 대안학교에서 나왔는데 미션스쿨이었어요(장대현중고등학교). 거기 교장 선생님이 남들이 보면 이상주의라고 말할 수도 있고 또 어떻게 보면 '꿈꾸는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 같은데. 항상 “꿈을 가져라. 너희는 할 수 있다. 너희가 가져가야 할 소명이 있다.” 이런 말씀을 계속해서 해주셨거든요. 그런 말들을 계속 들으면서 자랐어요.

교장 선생님 성함 기억나세요?

지금도 가끔씩 행사 때마다 뵙는데, 임창호 교장 선생님이요.

어쩌다가 대안학교를 선택했는지?

제가 와가지고 제일 어려웠던 것. 청소년 시기의 친구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부분이 그건 것 같아요. 정체성에 대해서 되게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아무도 북에서 왔다는 거를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저도 모르게 느꼈던 것 같아요. 친구들한테는 북에서 왔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었고. 사회 수업 시간에 북에 대해 배울 때는 너무 찔리는 거예요. 그것도 있었고, 저희 부모님이 언니가 일반 중학교를 갔을 때 좀 적응이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시고 “네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하셔서 탈북민 미션 스쿨로 보내주셨어요.

장대현중고등학교에 잘 적응했다고 들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저의 모든 외향적 성격이 오픈됐어요. '거기'서 왔다는 것과 남들의 시선이 더 이상 중요해지지 않았으니까 이것저것 활동도 많이 했어요. 6년 동안 그렇게 살다 보니까 몰랐는데 제가 20살 되고 (일반)초등학교 때 친구를 만났었단 말이에요. 그 친구들이 저보고 외향적으로 변한 것 같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 생각해 보면 노는 걸 좋아하긴 했는데 그냥 좀 조용히 무리에 껴있는 한 명이었거든요. 그래서 '내가 생각보다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었었구나' 그게 왜였을까 생각했을 때, '억눌린 것들이 있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던 것 같아요.

원래 소심한 사람이 아닌 걸 수도 있죠.

원래는 좀 외향적인 사람이었었는데 북에서부터 계속 억눌려 왔던 것 같아요. 항상 제 신분을 숨겨야 되고 들키면 잡혀간다라는 게 있었죠. 한국에서 외적으로는 그런 것들이 표현이 잘 되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한 4학년 때까지 악몽을 꿨어요.

어떤 악몽이었어요?

누가 저를 잡아서 칼로 죽이려고 하는 거나 대문 앞에서 쫓아오고...내 몸은 움직이지 않고, 뛰고 싶은데 뛸 수도 없고...그런 악몽을 계속 꿨거든요. 한국에 와서는 좀 많이 잦아들었긴 했는데 안 꾸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4, 5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대안학교 가서부터는 완전히 사라졌어요.

만 스무 살, 지금 보연 님의 삶은 어떤가요?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기예요. 초등학교 때는 좀 억눌린 것들이 있었고, 중학교 올라가서는 외부적으로 표출을 했는데, 그때 또 사춘기 시절이잖아요. 제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제 안에 담아두는 스타일이거든요. 2차 성징이 오면서 드는 많은 생각들을 계속 제 안에 꾹꾹 눌러담았었던 것 같아요. 또 가족들도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언니나 부모님이나 좀 어려움들이 있잖아요. 가족이 평안하지 않으니까 저도 거기에 엄청 매여 있었어요. 고등학생 되니까 입시에 대한 압박이나 진로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올해는 해소가 됐어요. 작년까지는 이것저것 알아가는 단계, 알을 깨고 부숴나가는 단계였고, 지금은 새로 태어난 것 같아요. 병아리가 됐어요.

병아리가 뭐예요?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고, 가족들의 문제를 제3자로 바라볼 수 있는. 제가 워낙 의존적이고 정이 많다 보니까 더 힘들었던 것 같은데, 저를 챙길 줄 알게 됐습니다. 문제에서 조금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긴 것 같아요.

꼭 이루고 싶은 꿈은 뭔가요?

저 그림 그리는 걸 너무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저는 제 개인 작업실을 갖고 싶어요. 정밀화를 좋아해서 사람 얼굴, 풍경 그리는 걸 좋아해요. 갤러리도 한번 전시해보고 싶고, 친구들 지인들 초대해서 같이 즐기는 꿈을 갖고 있어요.

요즘 연습하는 게 있어요?

제가 지금 건드리고 있는 게 소묘랑 아크릴, 색연필인데, 아크릴이 진짜 어려워요. 물감 색 맞춰 대합하기가 쉽지 않아서 학기 중에는 못 하고 요즘 색연필 그림을 간간히 그리고 있어요. 교양 수업도 명화 그리기 들어요. 그림 그릴 때 아무 생각 안 들고 24시간 동안 안 잘 수 있거든요. 정말 집중하면 배도 안 고프고 잠도 안 와요.

멜로가 체질 중/사진= 박보연 씨 인스타그램 imbobo_0
멜로가 체질 중/사진= 박보연 씨 인스타그램 imbobo_0
WEDNESSDAY/사진=박보연 씨 인스타그램 imbobo_0
WEDNESSDAY/사진=박보연 씨 인스타그램 imbobo_0

DnL 스쿨 하면서 느낀점

NGO 단체에도 관심이 많았어서 우리온 DnL 스쿨을 지원하게 된 것도 있었어요. 단체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서 여러 강의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별개로 우리온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나고 가까워지면서 느꼈던 게, ‘열정 없이 안 되겠다.’ ‘이분들은 금전적인 것들이 주된 목적이 아니구나. 그 이상 너머의 것을 바라보면서 일하고 계시는구나’라는 거를 진짜 많이 느꼈어요. 그게 단순히 '난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어'가 아니라 정말 그거에 대해서 행동하려고 하는데, '헌신하는 모습들이 쌓여야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구나' 이런 걸 많이 배우면서 ‘나는 그런 깜냥이 되나?’ 이런 생각을 계속 하고 있어요. 요즘 진로를 고민하면서 ‘나의 열정 최대치를 쏟아부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를 찾고 있어요.

DnL 스쿨이 보연 님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탈북민 청년들이 함께 모여서 하는 일이 많지는 않잖아요. 대학생이다 보니까 그게 주된 것들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놓치고 사는 부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만약 제가 이걸 하지 않았으면 ‘앞으로의 진로를 설정할 때 북한이라는 키워드가 설정이 됐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탈북민들에게 열정을 가지고 일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나도 뭔가를 좀 해봐야 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커뮤니티로서 우리온은 어떤 것 같아요?

복수전공이 북한학이거든요. 북한학에서 배우는 건 단순히 이론적인 부분들이잖아요. 배운 것을 실천할 수 있는 곳이 우리온 DnL 스쿨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몰랐던 북한에 대한 지식들을 (배우고) 직접 실천할 수 있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엄청난 메리트가 있어요. 진로나 또 제 삶 속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점들을 제시해 주니까 많은 도움이 됐죠. 계속 정보에 노출이 되니까 이 울타리 안에 좀 있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안 그러면 저를 자꾸 잃어버릴까 봐.

“나를 잃어버린다”?

사람들이 말하는 게 있잖아요. 좋은 기업에 가서 취직을 할 건지 북한과 아예 관련없는 다른 직업을 얻고 싶어 한다든지 더 좋은 대우에, 앞으로 노후가 잘 보장된 이런 직업을 얻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 말을 계속 듣다 보면 저도 그런 거에 대해서 고민하게 돼요. 만약 제가 우리온 같은 커뮤니티에 있지 않았다면 더 그런 쪽으로 생각했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나의 정체성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주니까 나도 북한 사람들을 위해서 뭔가를 하고 싶다라는 마음가짐을 계속 되새기게 돼서 그런 면에서 "나를 잃지 않을 수 있다"라는 말이 나온 것 같아요.

미래의 DnL 9기 학생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배워갈 수 있잖아요. 어른인데. 이 활동을 통해서 원하는 것들이 있을 거잖아요. 그 분야를 조금 더 파보려고 하면 좋겠고, 특히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쌓아갔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저 포함 주변 사람들을 봤을 때 스스로가 마이너라고 생각을 해서 최대치까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같이 하는 언니들 친구들을 통해서 많이 배웠거든요. '다들 엄청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위축되지 않고 정말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다른 청년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배울 수 있고, 다방면으로 진짜 배울 점이 많은 프로그램인 것 같아요.

차분함/사진=박보연 씨 인스타그램 imbobo_0
차분함/사진=박보연 씨 인스타그램 imbobo_0

박보연 씨와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고, 자신을 돌볼 줄 아는 건강한 20대 청년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로 표현했다. 그동안 남한 정착과정, 사춘기 시기, 입시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돼 지금은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성숙한 여성이 된 것이다. 그림을 취미로만 남겨두기엔 상당한 실력을 갖춘 박보연 씨. 먼 훗날, 그녀만의 작업실과 전시회라는 꿈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